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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에 맞춰 바꿔 신은 신발들 62년 연기 인생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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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이더 작성일24-05-14 04:24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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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박정자 62년이 흘렀습니다.
박정자 가 처음 무대에 선 1962년으로부터다. 이화여대 2학년 박정자는 그리스 신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아내인 페드라의 시녀 역으로 연극 무대에 섰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한국 연극사 와 궤적을 함께했습니다. 인터뷰 제안에 내게 남은 게 뭐가 있더라라며 고민하더니 그저 신발 몇 켤레가 거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기증했습니다. 인생의 압축판 무대 위 신발들무대 위에서 배우의 배역을 완성시켜 주는 것이 뭔지 아세요 바로 신발입니다. 보폭과 몸무게부터 성격까지 캐릭터를 표현하는 결정판이라는 것입니다. 의상 디자이너나 소품 담당자가 아닌데도 박정자는 늘 대본을 받자마자 이태원과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신발을 직접 고르고 때론 수선까지 맡아 했습니다. 최근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목줄을 맨 짐꾼 럭키였습니다. 아무도 이 배역을 박정자가 맡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채찍을 맞아 가며 맥락 없는 듯 철학적인 대사를 줄줄 읊으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 캐릭터를 위해 박정자는 반 고흐 작품에 나오는 듯한 낡은 구두를 골랐습니다.
무척 무거웠습니다. 절뚝거리는 연기를 하며 신발 밑창이 무대 바닥에 닿을 때 발이 짝짝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비로소 그 캐릭터를 완성시켰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8~9분에 달하는 유장한 대사를 끝내자 객석에서 부라보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아르코예술기록원 수장고 상자를 열어 죄다 꺼내 본 그의 무대용 신발들은 지난 연극사의 자취와 열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코오롱 하비에르 창원 김정옥 작연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어멈 에서 신은 군화는 전쟁을 겪으며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19 그리고 80′ 에서 직접 방울을 만들어 달았던 신발은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했습니다. 페드라 에서 신었던 굽 높은 샌들은 발이 너무 아플 지경이었으나 주인공의 강렬한 광기를 표출했고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의 단아한 신발은 평범한 어머니의 소박함을 드러냈습니다. 가르시아 로르카의 원작을 한국의 굿판으로 번안한 피의 결혼 의 짚신은 무대예술가 이병복 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어느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걸음걸이도 연기도 달라졌습니다. 그 숱한 연극들의 막은 내렸어도 배역의 영혼을 담은 듯한 신발들은 남았습니다. 박정자는 누가 사람 신발까지 유심히 보겠느냐고 그런 눈 밝고 행복한 관객들은 늘 있었다고 했습니다.
위기를 극복해 낸 위기의 여자기록원엔 박정자의 자필 메모가 적힌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 대본도 소장돼 있습니다. 코트 입고 랑베르에게 라이터 켜서 담뱃불 같은 구체적인 행동과 동선을 붉은색 사인펜으로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암전 침묵 몸짓과 대사로 이어지는 무대 위 마술 같은 디테일은 어린 박정자의 꿈이었습니다. 여덟 살 625가 나기 직전 봤던 연극 원술랑이 내면의 자양분이 됐다는 것입니다. 너무 개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때론 주연에서 밀려나기도 했던 박정자를 유명 인사로 만든 작품은 극단 산울림이 1986년 막을 올린 위기의 여자였습니다. 모범적인 듯 보이는 부부 사이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균열을 다룬 연극이었습니다. 연출가 임영웅 이 박정자에게 주인공 맡을 배우 좀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는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위기의 여자 박정자는 안 되나요 주연을 맡은 그는 강렬한 에너지를 대폭 낮추고 섬세함으로 무대를 채웠습니다. 위기의 여자는 6개월 동안 250회 공연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소극장이 주부 관객으로 넘쳐나는 희한한 사건을 매스컴이 여러 차례 보도했습니다. 일정이 너무나 바빠 박정자가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탄식할 만큼 연극 인생에서 힘든 시기였지만 그는 결국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그를 한 단계 더 올려놓은 작품이었습니다. 실제로 50세 되던 해부터 딸 역할을 바꿔 가며 장기 공연한 작품인데 눈물을 간신히 참던 관객의 눈을 매섭게 마주치며 연기를 했더니 다들 폭풍 오열했습니다. 크리넥스를 꺼내 생판 모르는 옆 사람에게 건네 주는 게 다 보였습니다. 모녀 둘이 와서는 손을 꼭 잡고 나가는 일이 늘 벌어졌습니다. 죽든가 아니면 여든 살이 되든가박정자씨 정직한 세월은 어김없이 또 해를 바꾸었네요 무대예술가 이병복이 2008년 고운 글씨로 보낸 편지 역시 기증품 중 하나다. 이병복은 2015년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받으며 시간을 상으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해 사람들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박정자는 2020년 자전적 연극 노래처럼 말해줘를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코로나가 시작될 때라 마스크를 쓴 관객이 객석을 채웠습니다. 그걸 보고 눈물이 났고 나이를 먹었다고 주저앉을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가끔 마스터나 파묘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박정자의 진짜 정체성은 여전히 무대에 있다고 했습니다. 배우란 한 사람에 국한된 인생이 아닙니다.
계속 다른 캐릭터로 여행을 해야 하죠.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럼 연극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디지털이 먼저 소멸되겠죠. 그래도 아날로그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연극이에요. 그 대신 연극은 가난하죠. 가난해서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박정자는 올해 고도를 기다리며에 이어 연극 햄릿의 광대 역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모친 조마리아 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극 19 그리고 80′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79세가 되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죽든가 여든 살이 되든가. 세 해가 더 지난 지금 그는 82세 현역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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