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소련서 열린 첫 한국 상품전 고려인 3세가 선물로 준 로조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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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이더 작성일24-05-28 02:22 조회38회 댓글0건본문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
1970년대 영화 대부에서부터 최근엔 미국 드라마 와이트 로터스 시즌 2의 배경이 된 로망의 섬. 통상 6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지는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섬 곳곳에서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숙박요식업소는 물론 주요 관광명소와 상점들도 팬데믹 후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슬며시 숟가락을 얹으며 지역 경제를 되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올댓분양 다름 아닌 구도심의 방치된 폐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탈리아 지자체들의 이야기다. 시칠리아 중심에 위치한 무소멜리시를 들여다보자. 한때 인구 만 오천 명을 상회하던 이 소도시는 감소하는 출산율과 일거리를 찾아 타지로 떠난 청년층의 이탈로 인구의 30 이상이 감소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인구는 23 로 유럽에서 가장 고령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인구는 100만 명 감소했으며 앞으로도 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가구 일주택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한 과세 부담이 커 소도시 내 주택 상속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택을 상속받음으로써 취할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세 부담이 커서 폐가가 양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소멜리시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발 벗고 뛰고 있습니다. 토티 니그렐리 부시장은 최근 미국과 호주 등 해외 방송에 출연해 지역 내 버려진 집들을 소개하며 단돈 1유로로 꿈의 시칠리아 집주인이 될 수 있다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집값은 상징적인 1유로지만 3년 안에 자비로 보수해야 합니다. 보수공사에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보수 작업 역시 섬 특유의 느릿느릿한 속도에 맞춰 이뤄진다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08년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1유로 집 프로젝트는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 시행 중입니다.
남부 유럽 최대 부동산 포털 아이딜리스타 에는 로마 외곽에서 시칠리아까지 수천 채의 이탈리아 폐가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무소멜리시의 경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약 400채의 버려진 집들이 새 주인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현지 건설업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관광객 수도 10배 증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고 홍보합니다. 나아가 구도심이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고 지역 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유발했다고 주장합니다. 국내 경제문제를 외국인을 활용해 해결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이 지속성 있는 해결책이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독자 김훈씨의 보물 삼성전자 전무와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독자 김훈 씨가 1988년 삼성전자 구주 총괄로 근무하던 시절 일입니다. 그해 5월 노태우 정부는 소련과 동유럽중국 등 이전 적성 국가였던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소련 최초 한국 상품전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습니다.
김씨는 난생처음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발을 디뎠다. 전시관 부스에 누가 봐도 우리 동포처럼 생긴 키 작은 젊은이가 슬라브족 미인인 아내와 함께 찾아와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고려인 3세 강금돌입니다. 레닌그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나중에 조섯 국숫집을 차리는 게 꿈이에요. 조선 국숫집 다섯 글자만은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팀원들의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쌓아놓은 컵라면을 그 청년 쇼핑백에 가득 넣어 주며 국숫집 운영에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강금돌이 다시 찾아와 고맙다는 표시로 사전을 한 권 건넸다. 로조사전 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소련의 조선어학자와 북한 학자가 공동 집필한 책으로 발행처는 모스크바의 국립외국어급민족어사전출판사였습니다.
분량은 1056쪽 누렇고 두꺼운 재질의 종이에 인쇄한 책이었습니다. 이후 강금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출간한 러시아어 사전은 1987년 고려대 러시아문화연구소에서 낸 노한사전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노문과에 다닌 한 전공자는 당시엔 로조사전과 조로사전의 비공식 영인본을 구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게 필수였다며 다들 사전이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고 한 장씩 외우고 뜯어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상품전이 열린 지 두 달 뒤 노태우 정부는 77 선언으로 종전 적성 국가들에 대한 개방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른바 북방 정책의 본격화였습니다.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9년 2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대 공산권 수교의 봇물이 터졌고 1990년 9월 한소 수교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졌습니다. 노태우 정부 기간 새로 수교한 나라는 45국이었으며 그 인구는 17억명이 넘었습니다.
1970년대 영화 대부에서부터 최근엔 미국 드라마 와이트 로터스 시즌 2의 배경이 된 로망의 섬. 통상 6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지는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섬 곳곳에서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숙박요식업소는 물론 주요 관광명소와 상점들도 팬데믹 후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슬며시 숟가락을 얹으며 지역 경제를 되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올댓분양 다름 아닌 구도심의 방치된 폐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탈리아 지자체들의 이야기다. 시칠리아 중심에 위치한 무소멜리시를 들여다보자. 한때 인구 만 오천 명을 상회하던 이 소도시는 감소하는 출산율과 일거리를 찾아 타지로 떠난 청년층의 이탈로 인구의 30 이상이 감소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인구는 23 로 유럽에서 가장 고령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인구는 100만 명 감소했으며 앞으로도 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가구 일주택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한 과세 부담이 커 소도시 내 주택 상속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택을 상속받음으로써 취할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세 부담이 커서 폐가가 양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소멜리시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발 벗고 뛰고 있습니다. 토티 니그렐리 부시장은 최근 미국과 호주 등 해외 방송에 출연해 지역 내 버려진 집들을 소개하며 단돈 1유로로 꿈의 시칠리아 집주인이 될 수 있다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집값은 상징적인 1유로지만 3년 안에 자비로 보수해야 합니다. 보수공사에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보수 작업 역시 섬 특유의 느릿느릿한 속도에 맞춰 이뤄진다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08년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1유로 집 프로젝트는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 시행 중입니다.
남부 유럽 최대 부동산 포털 아이딜리스타 에는 로마 외곽에서 시칠리아까지 수천 채의 이탈리아 폐가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무소멜리시의 경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약 400채의 버려진 집들이 새 주인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현지 건설업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관광객 수도 10배 증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고 홍보합니다. 나아가 구도심이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고 지역 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유발했다고 주장합니다. 국내 경제문제를 외국인을 활용해 해결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이 지속성 있는 해결책이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독자 김훈씨의 보물 삼성전자 전무와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독자 김훈 씨가 1988년 삼성전자 구주 총괄로 근무하던 시절 일입니다. 그해 5월 노태우 정부는 소련과 동유럽중국 등 이전 적성 국가였던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소련 최초 한국 상품전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습니다.
김씨는 난생처음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발을 디뎠다. 전시관 부스에 누가 봐도 우리 동포처럼 생긴 키 작은 젊은이가 슬라브족 미인인 아내와 함께 찾아와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고려인 3세 강금돌입니다. 레닌그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나중에 조섯 국숫집을 차리는 게 꿈이에요. 조선 국숫집 다섯 글자만은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팀원들의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쌓아놓은 컵라면을 그 청년 쇼핑백에 가득 넣어 주며 국숫집 운영에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강금돌이 다시 찾아와 고맙다는 표시로 사전을 한 권 건넸다. 로조사전 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소련의 조선어학자와 북한 학자가 공동 집필한 책으로 발행처는 모스크바의 국립외국어급민족어사전출판사였습니다.
분량은 1056쪽 누렇고 두꺼운 재질의 종이에 인쇄한 책이었습니다. 이후 강금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출간한 러시아어 사전은 1987년 고려대 러시아문화연구소에서 낸 노한사전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노문과에 다닌 한 전공자는 당시엔 로조사전과 조로사전의 비공식 영인본을 구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게 필수였다며 다들 사전이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고 한 장씩 외우고 뜯어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상품전이 열린 지 두 달 뒤 노태우 정부는 77 선언으로 종전 적성 국가들에 대한 개방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른바 북방 정책의 본격화였습니다.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9년 2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대 공산권 수교의 봇물이 터졌고 1990년 9월 한소 수교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졌습니다. 노태우 정부 기간 새로 수교한 나라는 45국이었으며 그 인구는 17억명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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